'명량' 오타니 료헤이 "최민식의 '걱정마' 한마디에…"(인터뷰)
'명량' 오타니 료헤이 "최민식의 '걱정마' 한마디에…"(인터뷰)
TV리포트 | 2014/08/04 06:57
[TV리포트=김수정 기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스파이'라는 단어에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우려와 부담감을 뚫고 선택한 영화 '명량'(김한민 감독, 빅스톤픽쳐스 제작). 전쟁과도 같았던 그 시간들을 버티고 나니 '자부심'이라는 소중한 훈장이 남았다. '명량'에서 조선의 편에 선 왜군 병사 준사를 연기한 배우 오타니 료헤이(33)를 만났다.
'명량'은 왜군의 간계에 의해 왕과 조정으로부터 버림받고 파면당했던 이순신이 명량에서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무찌른 명량대첩을 소재로 한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순신이 지닌 의미란 실로 어마어마하다. 전 세대를 거쳐 두루 사랑받는 인물 이순신의 가치는 위인 그 이상이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성웅 이순신을 그린 '명량'.
오타니 료헤이는 영화에 담긴 의미와 의도와는 별개로 일본인이기에 '명량'에 승선하기 전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아니, 오히려 그 자신보다 주변인의 걱정이 컸다. 그가 '명량'에서 연기한 왜군 병사 준사는 이순신 장군의 무도를 흠모해 투항하고 조선의 편에 선 인물이다. 명분 없는 전쟁을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준사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왜군의 결정적 정보와 작전을 빼내 이순신 장군에게 전한다.
"시나리오 보자마자 걱정됐죠. 스파이잖아요 일단. 아버지께서도 '잘 생각하고 출연해야 한다'고 우려하셨고요. 하지만 준사를 연기한다는 부담감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명량'의 영화적 매력에 끌렸어요. 사실, 제가 처음 맡은 캐릭터는 준사가 아니었어요. 제가 매력적으로 느낀 캐릭터는 준사였는데 말이죠. 며칠 뒤에 감독님께 제 역할이 바뀌었다고 전화가 왔어요. 준사를 일본인 배우에게 시키고 싶었다더라고요. 다행이었죠."
용기와 신념을 갖고 덤벼든 '명량'이지만 주변 우려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덩달아 마음이 심란해졌다. 한일 관계 역시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 흔들리고 외로울 때마다 최민식의 한마디가 그에게 큰 힘이 됐단다.
"(최)민식 형님이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와 주겠다'는 얘길 많이 해주셨어요. 비자 문제 생기면 바로 얘기하라고, 도와주겠다고. 민식 형님이 그렇게까지 힘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웃음) 무척이나 든든했죠. 촬영 도중에 한일 문제 관련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절대 신경 쓰지 마. 넌 우리 멤버야. 우린 네 편이다'고 다독여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도너츠 광고로 국내에 얼굴을 알린 이후 2006년 MBC 드라마 '소울메이트'를 시작으로 올해로 한국 연예계에 데뷔한 지 9년째인 그. 그의 배우 인생에서 '명량'이 가진 의미에 대해 묻자 한참 정적이 흘렀다. 그리곤 이내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조심스레 속내를 드러냈다.
"솔직히, 일본인들은 이순신 장군에 대해 거의 몰라요. 저만 해도 시나리오 받고 나서야 공부해 알게 됐죠. '명량'이 제게 어떤 의미가 될까요. 잘 설명을 못 하겠어요. 한일 문제가 있는 와중에, 일본인인 제가 이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굉장한 자부심을 느껴요. 앞으로 배우 활동할 때 '명량'의 멤버였다는 게 엄청난 힘이 될 것 같아요. 일본인인 제가 그 배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다음은 오타니 료헤이와의 일문일답.
-영화를 본 느낌이 어떤가
개봉날 일본인 친구 여럿과 함께 봤다. 일본인들은 이순신 장군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미리 배경 설명을 해줬더니 다행히 이해하는 눈치더라. 친구들은 일본어 대사만 알아듣는데도 재밌게 봤다더라. 특히 해상 전투 장면을 흥미롭게 본 것 같더라.
-영화만 봐도 고생한 게 절절하게 느껴지더라. 실제 촬영장은 어땠나
몇십 명의 배우들이 배 위에서 연기했다. 주조연을 떠나 작은 역할을 연기한 형님들도 정말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사실 난 현장에서 막내급이나 다름없었다. 최민식 형님도 열심히 하시는데, 감히 내가 힘들다고 투덜거릴 수 없었다. 과연 나는 나중에 형님들처럼 연기할 수 있을지 많은 반성을 했다. 다행히 고생해서 찍은 게 영화에 제대로 담겨 뿌듯하다. 죽도록 고생했는데 영화에선 티가 안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좀 김빠지거든.
-갑옷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던데.
맞다. 정말 엄청나게 무겁다. 다들 현장에서 갑옷 입기 싫어서 난리였다.(웃음) 스태프가 '갑옷 입으세요'라고 여러 번 얘기할 때까지 못 들은 척하고 끝까지 안 입고 버틴다. 억지로 갑옷을 입고 나면 일단 앉아서 쉬는 거다. 대충 오전 6~7시에 촬영을 시작하는데, 갑옷 입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도 너무 힘든 거다. 그럼 또 '배 타세요'라는 스태프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앉아서 버틴다.(좌중폭소) 배에 타고 나서도 일단 앉는다. 하하.
-촬영 중 부상도 많았다던데
늘 응급차가 현장에 있었다. 스태프가 리허설 하기 전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여기 다친 사람 있나요?'였을 정도다. 민식 형님도 소리 지르는 장면 찍다가 기절하셨고, 김한민 감독님도 한 번 쓰러지셨다. '명량' 촬영 중 가장 큰 부상은 내가 당했는데(웃음) 칼에 찔려 귀가 찢어졌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들 웬만한 부상은 참으면서 연기하는 분위기였는데, 이건 뭔가 느낌이 다르더라. 바로 응급실에 가서 봉합했지. 그 이후로 칼이 나오는 장면은 찍기가 무섭더라.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심리적으로 위축돼 힘들었다.
-그렇게 힘든 촬영장을 버티게 한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이순신 장군이다. 한국인에게 이순신이라는 존재는 엄청나잖나.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부심과 부담감이 있었다. 두 번째로는 최민식 형님이다. 정말 작은 역할을 하는 배우분들, 스태프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건네며 힘을 줬다. 일부러 벽을 없애기 위해 그러신 것 같다. 민식 형님이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민식 형님의 배려에 하나가 돼 따라가자는 분위기가 절로 만들어졌다. 내겐 민식 형님의 모습이 곧 이순신 장군이었다.
-'명량'을 찍으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받은 인상은 어떤가
12척의 배로 330척의 배를 무찔렀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아무리 회오리를 이용했다고 해도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했다. 일본 교과서를 찾아봐도 자세히 나와 있진 않더라. 영화 찍으면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배우고 나서야 명량대첩이 이해가 되더라.
-왜군 용병 구루지마, 장수 와키자카, 수장 도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었나
와키자카, 도도는 워낙 유명하다. 구루지마에 대해선 사실 잘 몰랐다. 우리 아버지께선 아시더라.(웃음)
-김한민 감독, 류승룡과는 '최종병기 활'(11) 이후 두 번째 호흡이다.
일단 김 감독님은 내게 엄청나게 고마운 분이다. 워낙 날 많이 아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류승룡 형님은 '최종병기 활' 이후 그야말로 스타가 되지 않았나. 많이 달라지셨으면 어쩌지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전혀. 여전히 먼저 편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다.
-한국 연예활동 하며 편견 때문에 힘든 적은?
다행히 한 번도 없었다. 한일 관계가 심란해질 때마다 '신경 쓰지 마라'라고 얘기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그중 한 명이 김한민 감독님이다. '네가 한일 관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정말 큰 용기를 줬다.
-일본 연예계 활동 계획은 없나
당연히 생각은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생각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니까. 일단 한국에서 좀 더 탄탄하게 잡아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예전엔 언어 때문에 역할 제약이 많았는데 요즘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놓치면 억울하고 욕심도 생긴다. 처음 한국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게 거의 10년 전인데, 그때와 내 자신도, 한국 연예계 환경도 많이 달라진 걸 느낀다. 신기하고 감사하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영화 '명량'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