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다시보기]11-① 금배지 밥그릇 쥔 '정치 빠꼼이' 아줌마 - 아시아경제
국회내 8개 식당 직원 110명 근무…정규직·비정규직·계약직 섞여 있어
줄서서 밥 타는 의원, 작은 특권 내려놓네요…음식에 까다로운 분노 ㅠㅠ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아 왜 있잖아. 안경 쓰고 야당 사람인데 그 사람이 우리 같은 밑바닥 식당 아줌마들한테 참 잘했어."
의원회관 직원식당에서 근무한 지 1년 됐다는 한 아주머니에게 성품 좋은 국회의원이 누구냐고 묻자 주저 않고 A의원을 호명한다. 아주머니는 본인을 '밑바닥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아주머니가 호평한 A의원은 종종 직원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했는데 '아주머니들이 고생 많다'며 떡과 음료수를 돌렸다고 한다. "아침마다 찬 챙겨준다고 고맙다고 떡, 음료수 같은 걸 사오시는 거야. 우릴 사람으로 대해줬어."
이 아주머니처럼 현재 국회 안 8개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은 110여명이다. 식당들은 국회 건물 곳곳에 흩어져 있다. 국회 본관 3층에 의원식당 1개(595㎡), 1층에 큰 식당(925㎡)과 작은 식당(200㎡)이 있다. 의원회관엔 총 3개의 직원식당이 운영 중인데 2층엔 국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직원식당(560㎡)과 F&S가 위탁운영하는 의원식당(460㎡)이 있다. 1층 식당(540㎡)은 신세계가 위탁운영 중이다. 국회도서관 지하 1층(540㎡)과 방문자센터 3층(440㎡)에도 식당이 하나씩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국회의원, 보좌진, 사무처 직원 등의 식사를 챙긴다. 새벽같이 나와서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의 끼니를 챙기는 이들의 눈에 비친 국회와 국회의원은 어떤 모습일까.올해로 국회 밥을 먹은 지 딱 20년이 되었다는 김미정(44·가명)씨는 의원회관 2층에 있는 직원식당에서 일한다. 스물네 살 때 국회에 처음 들어왔다. 국회 기능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국회후생원으로 불리는 연금매장에서 근무했는데 이곳에서 일할 당시 국회의원 얼굴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이때만 해도 의원식당, 간부식당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의원식당은 국회의원들만, 간부식당은 고위 직책자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때랑 비교하면 "국회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생각이 든단다. 지금은 의원식당이라고 이름 붙은 곳도 누구든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하다.
김씨는 식권 판매 업무를 맡고 있는데 일부러 국회수첩을 펴놓고 '공부'를 한다. 먼저 아는 체하고 인사하기 위해서다. 처음엔 얼굴 익히는 데 적잖이 애를 먹었다는데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국회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의원인지 보좌진인지 분간하는 '눈'이 생겼다고.
본청 직원식당에서 근무하는 아줌마들도 "배지 달고 다니니깐 당연히 의원인줄 알아보지. 아니면 옆에 보좌진을 대동하고 있거나. 딱 보면 의원인 줄 알아"라고 입을 모았다. 국회의원 이름과 지역구를 척척 꿰는 이도 있었다. 다른 아줌마들이 '저 의원 누구지'하고 고개를 갸웃하면 "○○○의원, 어디가 지역구야"라고 막힘없이 대답할 정도라고. 이 아주머니는 일부러 국회수첩을 사서 의원 이름과 지역구를 암기했다고 하는데 식당 아줌마들 사이에선 '걸어 다니는 국회 명부'로 불린다.
직원식당의 경우 보통 아침 7시30분부터 배식을 시작하기 때문에 식사 준비를 하려면 늦어도 오전 6시엔 출근한다. 김씨에게는 각각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인 아들과 딸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부터 애들 아침밥을 차려준 게 손에 꼽힌다. 대신 다른 사람 아침을 챙겨주는 일로 생계를 꾸린다. "가끔 식당에 아이들을 불러서 숙제도 봐주고 하면서 일해요. 그냥 식당이 아니라 국회 내 있는 식당이니깐 식당 아줌마라는 직업이 덜 창피한 것 같아요"라며 김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식당 직원과 의원의 관계지만 국회 밖을 나서면 유권자와 한 표를 바라는 후보자의 입장으로 뒤바뀐다. 한 직원은 "지역구 의원이 지나가면 아무래도 유심히 보게 된다.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는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말했다.
민생을 살핀다는 국회의원이 정작 국회 내 직원들의 처우에는 무관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식당 직원은 "20여명 가까이 근무하는 이곳에만 정규직, 계약직, 비정규직이 뒤섞여 있다"며 "한 지붕 두 가족 체제이기 때문에 국회 청소노동자들처럼 단합이 잘 안 된다. 아예 의견을 낼 창구조차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국회에는 아예 '의원식당'이라고 이름 붙은 식당도 있다. 본청 3층과 의원회관 2층에 각각 1개씩 있다. 두 식당의 식대는 다른 식당보다 2배가량 비싸다. 직원식당의 점심값이 직원 2800원, 방문객 4000원인데 비해 의원식당의 오찬 가격은 8000~9000원이다.
그렇다 보니 주로 행사나 회의 이후 함께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의원들이 찾는다. 조찬 예약이 많은데 20명 이상이 돼야 예약이 가능하다. 이곳을 위탁 운영하는 F&S에 문의한 결과 본회의가 열리는 달에는 하루걸러, 본회의가 없는 달에는 한 달에 2~3개의 조찬 예약이 잡힌다고 한다. 국회 일정에 따라 이용 횟수가 현저히 차이 나는 셈이다.
본청 의원식당은 하루 평균 20여명의 국회의원이 찾는다. 15년 동안 이곳에서 근무했다는 김모씨는 인상 깊었던 의원으로 강원도가 지역구인 B의원을 꼽았다. 방송인 출신인 B의원은 보좌진들과 함께 식사하러 오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줄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고 한다. "의원식당이기 때문에 의원들이 우선순위다. 굳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데 이 작은 특권이라도 내려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식당을 찾는 의원들 중에서 떡과 음료수를 돌려 인심을 산 의원도 있다. 4선인 C의원은 조식 제공 시간이 끝난 9시에 예고 없이 손님을 끌고 들이닥친 것이 미안했던지 식사 후에 음료수를 돌렸다. 이에 대해 한 식당 직원은 "보좌진이 돌렸겠지. 의원이 돌리라고 했겠어"라고 말했다. 반면 18대 D의원은 음식에 유독 까다롭게 굴었다고 한다.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똑같이 식당 아줌마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의원들이 대다수라고. 이정화(가명)씨는 엘리베이터에서 자기를 먼저 알아본 의원을 아직도 기억한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재선의원인 E의원이 "사복 입으니깐 다르시네요"라고 먼저 말을 붙였단다. 별말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았단다. "사복 입고 있으면 못 알아보는 의원들이 많은데 별일 아니지만 먼저 기억해 주는 것이 고맙더라고요."
북적거리던 식당이 고요해진 오후 3시. 식당 아줌마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줌마들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숟가락, 젓가락 정리에 여념이 없다. "국회의원들 자주 보시죠? 어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별다른 거 없어요. 뭐 우리 같은 사람한테 관심도 없고"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 말을 받아 무심히 아이스크림을 깨물던 한 아주머니가 입을 뗀다. "한 공간에 함께 머무르는 우리들도 이 정도인데 국민이 국회의원의 진면목을 파악하기란 얼마나 더 어렵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