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무한도전>이 점차 상황 위주의 예능에서 캐릭터 중심의 쇼로 자리를 잡으며 정형돈은 점점 캐릭터를 잃어갔다. 건방진 면모는 하하가, 뚱뚱함과 식탐은 정준하가, 안하무인의 독한 캐릭터는 박명수가 가져가면서 자신만의 캐릭터가 희석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형돈이 상황정리를 유재석보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 발음이나 멘트가 노홍철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캐릭터가 사라진 정형돈은 점점 위축됐고, <무한도전>은 그에게 ‘웃기는 것만 빼곤 다 잘하는, 못 웃기는 개그맨’이라는 캐릭터를 안겨주었다. 물론 그때의 정형돈에게도 ‘진상’이라는 캐릭터가 있었고, 은근히 뛰어난 운동신경도 있었지만, ‘못 웃기는 코미디언’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그 프레임 안에서 자신의 장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미처 몰랐던 정형돈은 아주 긴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이 평범함에 팬들의 호응으로 얻은 자신감이 더해지면서, 역설적으로 ‘비범하리만치 평범한 남자’라는 정형돈 특유의 캐릭터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촌스러운 은갈치색 슈트에 꺾어 신은 신발, 오래되어 버클이 녹이 슬 지경인 가방을 멘 ‘형돈이 패션’을 선보이며 뻔뻔스레 “보고 있나 지드래곤?”이라고 말하며 패션의 아이콘 지드래곤을 도발한다거나, 엄청난 가창력이 필요한 조관우의 ‘늪’을 형편없이 불러 참극을 빚어내고도 당당하기 짝이 없는 그의 태도는 특출나지 않은 걸 부끄러워하던 모든 평범한 장삼이사들에게 미묘한 통쾌함을 주었다. 평범한 걸 비범한 것이라 뻔뻔스레 들이미는 그 자신감으로 정형돈은 스스로를 구원했고, 친구인 데프콘을 예능의 기대주로 성장시켰으며, 8주짜리 아이템 <주간 아이돌>을 해당 채널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키며 <무한도전> 멤버들 중 유일하게 유재석 없이도 메인 엠시로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한국방송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동네 조기축구 수준의 실력을 지닌 정형돈이 이영표에게 축구를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밉지 않은 웃음을 줄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함을 이유로 위축되지 않는 특유의 뻔뻔스러움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