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은 왜 70대 김성근에게 다시 열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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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프로야구계를 떠나 있는 지금도 화제의 중심에 종종 오른다.
프로야구단 사령탑에 공석이 생길 때마다 '노(老)감독'의 이름이 항상 하마평에 오르고, 굵직한 야구계 이슈가 있을 때마다 김성근 감독의 고언이 많은 야구팬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그의 야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정, 뚜렷한 철학은 많은 야구인들과 팬들에게 지지를 받는다.
프로야구 현실을 향한 '노감독'의 쓴소리
김 감독은 지난 주말 KIA와 LG의 경기에서 오랜만에 해설을 맡았다. SK 감독직에서 사임한 이후,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김 감독을 해설자 만난 게 새로웠지만, 무엇보다 국내 프로야구의 현 주소에 대한 노감독 특유의 직설화법이 화제였다.
김성근 감독은 이날 해설 내내 선수와 구단은 물론, 국내 프로야구 전반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LG에 대해서는 "지난해 2위에 만족했다. 지난해는 노장들이 기대 이상을 발휘한 해였다. 그 활약이 올해도 똑같이 이어질 거라는 안일한 계산을 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KIA에 대해서는 수비와 주루 등에서 집중력 없는 플레이가 이어지자 "프로라면 어려운 플레이도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일을 어렵게 하면 아마추어다"라고 일침을 가하며 "KIA가 이래서 하위권에 있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최근 에이스로 호투하는 KIA 선발 양현종에 관한 날카로운 지적도 했다. "에이스는 팀 사정에 맞게 활약해 줘야 한다. KIA는 불펜이 약하기 때문에 에이스라면 삼진보다 완투를 목표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최근 맹타를 휘두르는 나지완에 대해서는 김성근 감독 본인에게 쓴 아픔을 남긴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을 떠올리며 "만일 이 선수가 SK에 있었다면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도 차지했을 것"이라며 "지금 실력이면 아시안게임 엔트리에 들어도 충분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방송 중계 이후 김 감독의 해설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단지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칭찬했다는 내용을 떠나, 김 감독의 지적이 기존 방송이나 언론이 차마 언급하지 못한 국내 프로야구의 가려운 부분을 정면으로 긁어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인맥과 서열로 얽힌 국내 야구계에서 어지간한 야구인 출신 해설자들도 특정 선수나 구단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삼간다. 공연히 오해의 소지를 불러올 수 있을 뿐더러 팬들의 반발이나 역풍을 부를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런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야구계 원로로서 현역 감독이나 선수들이 모두 그의 제자뻘이라는 지위도 눈치보지 않고 소신껏 할 말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순간의 감정이나 선입견에 치우치지 않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비판이라는 것도 많은 이들이 김성근 감독의 지적에 공감한 이유다. 그것은 김성근 감독이 이제껏 야구인으로서 걸어온 행보가 주는 신뢰이기도 하다.
타고투저와 하향평준화가 부각되는 최근 프로야구에서 김성근 감독이 다시 조명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만의 확고한 야구철학을 바탕으로 성과를 끌어내는 고유의 '김성근 스타일'이 주는 희소성 때문이다.
호불호 엇갈리는 '김성근 스타일'
사실 김성근 감독은 공과와 호불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김 감독은 2007년 SK 지휘봉을 잡은 뒤 세 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으로 SK를 왕조 반열에 올려놓았다. 철저히 기본기를 강조하고 개인보다는 팀을 중시하는 엄격한 운영방식으로 약팀을 강팀으로, 평범한 선수를 스타로 키우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반면 지나치게 승리와 결과만을 중시하는 독선적인 야구철학에 거부감을 느끼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그가 맡은 팀마다 현장의 권한 문제를 놓고 프런트와 갈등을 벌인 일도 다반사였다.
혹독한 스파르타 훈련과 철저한 감독 중심의 운영 방식을 두고 "오직 한국야구에서만 가능한 일방통행형 리더십"이라는 평가와 "프런트 야구와 선수들의 개인주의가 강한 현대야구의 시류에는 맞지 않는 감독"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김성근 감독의 지도철학이 재조명 받는 데는 최근 프로야구의 기형적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프런트 야구(구단 측에서 경기에 영향을 것)의 득세 속에서 감독의 역량과 권한은 점점 축소되고 점점 각 팀마다 고유의 색깔을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10구단 체제를 앞둔 야구계의 외형적인 성장과 달리 선수들의 기량이나 경기 수준은 퇴보하는 추세다. 철저한 감독 중심의 야구를 표방하며 기본기와 훈련량을 가장 중시하는 김성근 스타일의 야구철학과 비교했을 때, 최근 야구의 흐름은 분명히 퇴보에 가깝다.
물론 김성근 감독의 야구만이 완벽한 모범 답안은 아니다. 그러나 '김성근식 야구'가 사라진 지금의 프로야구가, 김성근 야구보다 더 뛰어나거나 발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많은 팬들은 그래서 차라리 비정했을지언정, 특유의 치밀함과 집요함으로 상대에게 약간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던 김성근식 야구가 더 프로다웠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김성근 감독이 프로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현 소속팀인 고양 원더스와의 계약은 올시즌을 끝으로 종료된다. 현재 프로야구 1군에 있는 KIA, SK, 한화 등도 올시즌 후 기존 사령탑들과의 계약기간이 끝난다. 70대를 넘긴 고령의 나이와 구단 수뇌부와의 잦은 갈등 전력이 문제지만, 성적향상과 변화를 갈망하는 팀이라면 여전히 김성근 감독에게 매력을 느낄 만하다.
많은 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김성근식 감독의 야구와 철학이 국내 프로야구에 가져다 줄 긍정적인 자극이다. 김성근 야구에 대한 호불호는 앞으로도 존재하겠지만, 현재 야구계에는 그만큼 확고한 철학과 색깔을 지닌 야구인도 드물다.
김성근이라는 이름이 여전히 한국야구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