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E 통신망, '세계 최초'가 그리 중요한가요? : 네이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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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통신망, '세계 최초'가 그리 중요한가요?

기사입력 2014-07-02 18:09

기사원문 163

시험지 먼저 낸 학생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세계 최초', 이 말에서 어떤 감정이 와 닿습니까? 저는 식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다가옵니다. ‘남들도 다 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조금 더 먼저 했다’는 인상이지요.
이번 월요일, 통신3사는 일제히 광대역 LTE-A의 상용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엇비슷한 내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이에 LG유플러스의 ‘세계 최초 광대역 LTE-A 전국망 서비스’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말 그대로 한 국가 전체에 광대역 LTE-A를 설치한 것이 처음이라는 얘깁니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자료를 찾다보니 '세계 최초 비디오 LTE'도 있습니다. 이 정도는 애교입니다. 요즘 SK텔레콤이 하고 있는 ‘세계 최초’ 광고도 눈에 들어옵니다. “세계 최초, 아무나 하는 줄 알아?”라는 아주 자극적인 대사가 귀를 콕 찌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R_zH6-Wqbt8
▲SK텔레콤 광대역 LTE-A 광고, ☞유튜브로 보기
네, 세계최초 광대역 LTE-A는 SK텔레콤이 가장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건 명확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최초가 혼자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며칠 사이로 KT와 LG유플러스도 뒤따라 붙었습니다. 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며칠 만에 따라 붙은 건 절대 아닙니다. 오랫동안 통신 3사가, 그리고 그 뒤에서 일하고 있는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이 벌써 지난해부터 망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지금 며칠 사이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럼 SK텔레콤이 가장 기술력이 좋아서 먼저 시작했을까요? 그건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통신 업계에서는 이 ‘세계 최초’ 딱지는 삼성전자가 SK텔레콤에 ‘선물’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다분합니다. SK텔레콤이 광대역LTE-A 서비스를 시작하던 날, 언제 시작하냐고 타 통신사 담당자들에게 넌지시 물어봤더니 준비는 다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세계 최초로 망을 세우고 테스트한 건 우리 회사’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누가 먼저인지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또 딱히 처음이 분명하지도 않습니다.
Uplus_lte-a
새로운 통신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기지국과 망이 세워져야 하고, 상용화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통과해야 합니다. 테스트는 이미 올해 초부터 시작했고 6월에는 3개 통신사 모두 상용화 준비를 마쳤습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건 이 3개 신호를 잡아서 하나로 합쳐 쓸 수 있는 단말기가 필요합니다. 그 단말기는 뭘까요? 지금 이 기사를 쓰는 2014년 7월 2일 현재 삼성전자의 갤럭시S5 광대역 LTE-A 뿐입니다. 이 단말기를 팔 수 있어야 비로소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이 기기를 누가 먼저 받느냐는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동시에 줄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이건 제품을 갖고 있는 제조사가 통신사에게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선물입니다. 광대역 LTE-A를 쓰는 단말기라는 의미 때문에 한 통신사에만 아예 단독으로 줄 수는 없겠지만 양산이나 각 통신사 서비스 등의 이유로 순차 출시를 할 수는 있습니다. 어차피 이런 것도 다 계약 관계고, 영업력이 영향을 끼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세계 최초라는 말의 의미는 불편합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가장 빠른 LTE 기술을 도입해서 우리가 쓸 수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 세계 최초를 이루는 과정이 그렇게까지 자랑할 일인가 싶습니다. 단말기를 먼저 받는 것이 세계 최초를 결정한다는 건 통신사로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 위로 올라가보면 최초 서비스는 제조사가 결정하고, 최초 단말기는 칩셋 제조사가 정하는 구조입니다.
광고에는 “아무나 하는 것 아니야, 세계 최초 못 하는 데에서 들으면…”, “세계 최초 당연한 줄 아나봐”처럼 굉장히 자극적인 멘트도 나옵니다. 광고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계 최초가 곧 혼자만 할 수 있는 단독 서비스도 아닌데 말이지요. 혹시 ‘세계 최초 못하는 데’ 들으라고 내보내는 광고라면 성공한 것 같긴 합니다. 그리고 제가 경쟁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제대로 서비스하는 광대역 LTE-A'라고 맞대응할 것 같습니다. 서두에 잠깐 이야기했는데, 시험지 먼저 낸 학생과 좋은 성적을 연결할 연결 고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답답한 건 SK텔레콤 뿐이 아닙니다. ‘세계 최초’ 마케팅에 대해 불편한 내색을 끼치던 다른 통신사들도 이내 단말기를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광대역 LTE-A를 위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끝내자 곧바로 ‘세계 최초’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세계 최초가 너무 많습니다. 통신사들의 최초 경쟁은 그 동안 LTE, VoLTE, LTE-A, 갤럭시S5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최초가 단독이 되는 경우는 길어야 일주일, 심지어 30분 내로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누가 먼저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합니다. 발표 당시 큰 논란을 빚었던 VoLTE 서비스, 누가 최초인지 기억하시나요? 처음이기 때문에 지금 쓰는 통신사를 고르셨나요? 물론 이렇게 세계 최초가 쏟아져 나오는 데에는 언론사들이 그 메시지를 좋아한다는 것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SKT_LTE-A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지금 현 시점에서 LTE 속도에 불편을 느끼는 이용자는 별로 없습니다. 현재 이용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는 더 빠른 것도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통신 기술을 도입하는 건 더더욱 아닐 겁니다. 이미 적지 않은 소비자들이 갤럭시S5 광대역LTE-A의 출시를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품이 나온지 세 달 남짓 됐는데 그 사이에 보조금으로 가격이 널뛰더니, 순식간에 구형 기기로 전락했습니다. 소비자는 새 기술에 대해 세계 최초를 기억하기보다 ‘또 당했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이 정도 시차라면 통신사도 그렇고 제조사도 그렇고 단말기 출시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 아닐까요.
최신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고, 관련된 기술과 자본력, 그리고 서비스를 이용할 소비자라는 3박자를 정확하게 잘 맞추고 있는 국내 통신사들의 통신 서비스는 칭찬할 만 합니다. 치열한 속도 경쟁이 인터넷 최고 속도라는 훈장으로도 연결되었고, 네이버나 카카오톡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통신 서비스의 종류, 속도로는 경쟁할 수 없다는 걸 통신사 스스로 알고 있을 겁니다. 도통 터지지 않던 3G시절에는 차세대 통신망, 더 빠른 서비스가 중요했겠지만 다음 단계에서 이용자들이 원하는 건 좀 더 좋은 서비스, 저렴한 요금 등일 겁니다. 이것보다 통신사 고르는 기준이 ‘세계 최초’가 우선인 소비자, 적어도 제 주변에서는 못 찾겠네요. 세계 최초라는 말이 지금 가장 중요한 키 메시지는 아니겠죠? 단순히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길 바랍니다. 우리나라 통신사들이 하고 있는 일들 중에는 '세계 최초'보다 훨씬 칭찬 받아야 할 일들이 쌓이고 쌓였습니다.
최호섭 기자 allove@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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