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도 알제리도 후루룩… 라면 이제는 '월드면'
B1면
| 기사입력 2014-07-03 03:06
/그래픽=김성규 기자
[면발로 세계를 묶다… 124개국 진출, 2억달러 수출 '라면 韓流 시대']
-아프리카에서도 "신컵 신컵"
케냐 홈쇼핑 진출한 농심 신라면… 태국産보다 비싸도 불티나게 팔려
남태평양 섬 투발루에도 한국 라면
-동남아에선 노란색 전략
오뚜기, 홍콩에선 치즈 넣어 인기
팔도, 러시아에선 마요네즈 넣어
한국 라면이 매년 수출 기록을 갈아치우며 한국 산업계의 '기린아(麒麟兒)'로 성장하고 있다. 2일 관세청 자료를 본지가 분석한 결과, 2013년 한 해 동안 한국 식품 기업들이 해외로 수출한 라면은 2억1552만달러(약 2170억원)어치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올 들어도 5월 말까지 수출액이 9000만달러에 달해 올해도 신기록 경신이 확실시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출 라면 외에 해외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까지 포함한 해외 매출 규모는 훨씬 커 '라면 한류(韓流)' 열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중남미까지 전 세계 외국인들이 한국 라면을 문화 상품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별로 각기 다른 입맛을 잡기 위한 한국 기업들의 '맞춤형 마케팅 전략'이 가세해 한국 라면은 124개 국가에 진출했다.
◇'맨땅에 헤딩'… 지구 끝까지 파고든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복판에 있는 대형 마트인 나쿠마트(Nakumatt) 매장. 번쩍번쩍 빛나는 귀금속을 몸에 휘감은 고객들이 '신컵(Shin Cup)' 매장 앞에 모여 "모토(Moto·불꽃)", "필리필리(pilipili·고추)"를 연발(連發)한다. "먹으면 혀가 불타는 것 같다"면서도 상자째 사들고 나가는 게 현지 상황이다.
'신컵'은 농심의 신라면 컵라면을 줄여 부르는 말. 인도나 태국산 라면보다 가격이 3배 이상 비싸지만 최근 불티나게 팔린다. 작년 말 케냐 유일의 TV 홈쇼핑 전파를 타면서 '프리미엄 식품'으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효과이다. 당시 TV 홈쇼핑 프로그램에서는 쇼호스트가 직접 라면을 끓이면서 '신컵'을 홍보했다.
농심은 올해 5월 아프리카 북부 니제르와 알제리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이용재 해외사업본부장은 "동부의 케냐, 남부의 남아공, 북부의 니제르 등을 삼각(三角) 거점으로 '검은 대륙'을 파고들고 있다"며 "최소 3년에서 5년 앞을 내다보고 '맨땅에 헤딩하는' 각오로 공략하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바누아투와 키리바시·나우루·투발루 등에서도 '코리안 라면'이 유행이다. 일본 업체들이 현지 시장을 독식(獨食)한 10여년 전에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요즘 현지 주민들은 "기브 미 레드 패키지(빨간 봉지 주세요)"라고 한다. 신라면을 달라는 뜻이다.
◇정교한 현지화… "식습관에 答이 있다"
팔도의 사각형 용기면 '도시락'은 '러시아 라면 시장의 차르(帝王)'로 불린다. 현지 시장 점유율이 60%를 넘는다. 러시아에서 팔리는 양이 국내 매출의 40배에 달한다.
김영종 면(麵)연구팀 책임연구원은 "소고기 수프를 쓰는 다른 나라용 제품과 달리 러시아로 수출하는 '도시락'에는 닭고기 수프를 쓴다"고 했다. 버섯이나 새우의 맛과 향이 나는 '러시아 시장 전용 제품'만 20종이 넘는다.
음식에 마요네즈를 넣어서 먹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 마요네즈 소스를 추가한 '도시락 플러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나무젓가락 대신 작은 플라스틱 포크를 용기에 넣은 전략도 적중했다.
오뚜기는 '보들보들 치즈라면'을 주력 아이템으로 홍콩·싱가포르 등 동남아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맵지 않은 라면'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2012년보다 40% 정도 치솟았다. 필리핀 현지 매장에는 '옐로 존(Yellow Zone)'을 만들었다. 오뚜기 로고부터 치즈라면 포장지까지 '노란색' 이미지를 소비자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치즈라면이 인기를 끌자 같이 진열한 소스 제품의 매출도 덩달아 올랐다. 삼양식품은 제대로 된 매운맛을 보여주겠다며 화끈한 불닭볶음면을 앞세워 동남아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한국 기업들은 16억명 무슬림 시장을 겨냥한 할랄(halal) 라면도 만들었다. 이슬람 율법에 맞춰 돼지고기 원료 등을 쓰지 않고 만든 제품이다. 농심은 부산공장 전용 라인에서 만든 '할랄 신라면'을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9개국에 수출한다. 삼양식품은 할랄 인증을 받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시장 개척에 나섰다.
◇'라면 韓流 특수' 더 키울 전략 필요
중국 대륙에선 올해 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한류 열풍이 거셌다. 중국인들이 '싱니(星�)'라 부르는 이 드라마에 천송이·도민준 커플이 다정하게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온 것을 계기로 '한국 라면 특수(特需)'가 벌어졌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타오바오(淘寶)의 라면 매출이 방영 전 주(週)에 비해 60%나 치솟았고, 상하이 라면 전문점에서는 1시간 넘게 장사진이 들어섰다. 농심 중국법인은 타오바오와 직영 판매 계약을 맺고 동북3성과 서부 내륙 지역 진출을 추진 중이다.
미주와 유럽, 남미에서 한국 라면 시장도 급성장 중이다.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 히스패닉계(系)의 입맛을 잡아 조기 정착에 성공한 미주 시장의 경우, 농심은 2005년 준공한 LA공장을 거점으로 미국 동부와 멕시코·브라질 등 중남미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농심은 올 초 해외시장개척팀을 새로 만들어 고삐를 죄고 있다. 농심이 진출해 있는 나라는 모두 93개국으로 100개국을 곧 돌파할 전망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라면 기업들이 개척한 해외시장은 향후 '음식 한류(韓流)'가 본격 진출하는 '황금 교두보'가 된다"며 "'라면 한류'를 더 크고 실속 있는 대표 상품으로 키울 수 있도록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