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맥주 시장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양분해왔다. 이들 회사는 제품 자체의 경쟁력보다는 영업이나 광고마케팅으로 승부를 겨루다 맛과 제품 다각화 등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맥주 맛에 등을 돌린 소비자들은 새로운 맛을 찾아 수입맥주로 손을 뻗었다. 올해 상반기 맥주 수입량이 2000년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까닭이다.
수입맥주가 한국 맥주시장을 이처럼 야금야금 점유하면 한국맥주가 혹시 큰 타격을 받진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런 건 아니다. 카스, 하이트, 클라우드를 생산하는 국내 맥주회사들이 '라이선스 생산' '직접 수입' '계열사를 통한 간접 수입' 방식으로 유명 해외맥주를 들여와 팔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맥주 체인점인 와바와 맥주바켓이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판매 1위 맥주는 벨기에 브랜드인 호가든이다. 호가든은 판매량 통계에서 1위 자리를 거의 놓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상당수 소비자가 수입산으로 알고 있는 호가든을 국내 1위 맥주 기업인 OB맥주가 생산한다는 점이다. 버드와이저도 호가든과 마찬가지로 미국 맥주업체와 로얄티 계약을 맺어 OB맥주가 직접 만들고 있다.
더 재미있는 건 한국 소비자가 즐겨 찾는 아사히,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기린 이치방 등 인기 수입 맥주 대부분을 국내 맥주 3대 기업인 OB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아사히주류가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입맥주 열풍에도 국내 맥주사들이 당황하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OB맥주는 한쪽 호주머니가 비면 다른 쪽 호주머니를 채우는 시스템의 덕을 가장 많이 보고 있다. OB맥주는 라이선스 생산방식을 통해 호가든, 버드와이저를 생산하고 있고, 버드 아이스, 코로나, 스텔라 아르투아, 벡스, 레페 브라운, 레페 블론드,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등은 직접 수입 방식으로 들여와 팔고 있다.
오비맥주만큼은 아니지만 하이트진로도 수입맥주 점유율 높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기린 이치방, 크로넨버그 1664, 싱하를 수입한다. 하이트진로는 한국에서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 중인 기린 이치방을 아사히맥주 못지않은 브랜드로 키우려고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기린 이치방 가든'을 오픈했다. 칼스버그의 프랑스 계열사 브랜드인 크로넨버그 1664는 프랑스 판매 1위를 자랑하고, 올 몰트(All Malt) 맥주로 유명한 싱하는 태국 1위 주류회사인 분럿에서 만든다. 오비맥주처럼 제품군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하이트진로가 수입맥주 시장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클라우드를 내놓으며 맥주사업에 진출한 롯데칠성음료의 경우는 좀 다르다. 계열사인 롯데아사히주류를 통한 간접 수입 방식으로 아사히 등 해외맥주를 들여온다. 롯데아사히주류는 최근 이례적으로 업소용 병맥주의 출고가를 2,450원에서 2,170원(세금 불포함)으로 11.4%(280원) 인하해 업계에 파란을 일으킬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맥주회사의 매출액 중 수입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수입맥주 매출 현황을 묻자 OB맥주와 하이트진로, 롯데아사히주류는 하나같이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OB맥주 관계자는 "인베브가 지난 4월 오비맥주를 인수한 뒤 '내부 자료를 철저하게 관리하라'는 규정이 생겨 상세 자료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정확히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지만 OB맥주가 수입하는 맥주는 전체 프리미엄 맥주 시장에서 물량 기준으로 25~30% 정도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하이트진로 홍보팀 관계자는 "기린 이치방은 지난해 초부터 수입하기 시작해 매출액을 자세하게 알려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롯데아사히주류 관계자는 "감사보고서 기준에 따라 전체 매출액은 공개할 수 있지만 맥주 관련 자료는 제공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수입맥주 매출 현황은 한국주류산업협회나 한국주류수입협회에 문의해도 찾을 수 없었다. 한국주류산업협회 홈페이지에 매월 꾸준히 업데이트되던 주류별 출고 동향도 2012년을 끝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한국주류산업협회와 한국주류수입협회는 회원사에 볼멘소리를 쏟았다.
한국주류산업협회 관계자는 "통계 발표 자체를 껄끄러워하는 것인지 회원사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주류수입협회 관계자도 "OB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아사히주류 에 물어봐야 하는데 잘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도 분위기를 보고 대충 파악하는 정도다"라며 "요즘 듣기로는 아사히 맥주가 제일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인터넷뉴스본부 천선휴 기자 ssunhue@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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