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독서 :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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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독서

[ 賜暇讀書 ]
요약
조선시대에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

세종대에 학자를 양성하고 유교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여, 1424년(세종 6) 집현전 학사 중에서 젊고 재주가 있는 자를 골라 관청의 공무에 종사하는 대신 집에서 학문연구에 전념하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세종 말엽에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등 6인에게 휴가를 주어 절에서 글을 읽게 하는 등 여러 차례 시행되다가, 1456년(세조 2) 집현전의 혁파와 함께 폐지되었다.

1476년(성종 7) 채수(蔡壽) 등 6인에게 다시 독서를 위한 휴가를 주었고, 1483년에는 용산의 빈 사찰을 수리하여 국왕이 독서당(讀書堂)이라는 편액을 내려 사가독서하는 장소로 쓰도록 하였다. 이곳을 남호당(南湖堂) 또는 용호당(龍湖堂)이라고 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이후 이 제도와 함께 독서당도 폐지되었다. 중종이 즉위한 뒤 사가독서에 관한 절목을 마련하도록 지시하면서 다시 시행되었다. 1517년(중종 12) 두모포(豆毛浦:옥수동)에 다시 독서당을 지었는데, 이곳을 동호당(東湖堂)이라 하였다.

선발된 학자는 집현전이나 홍문관 관원 못지않게 국왕의 총애를 받아, 국왕이 직접 술잔을 내려주며 술 마시는 것을 경계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명맥만 이어오다가 1709년(숙종 35) 이후 폐쇄되었다. 동호당이 있던 지금의 옥수동 일원을 얼마 전까지도 독서당 마을이란 뜻으로 '한림말'이라 불렀고, 약수동에서 옥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독서당고개', 그 길을 지금도 '독서당길'이라 부른다. 이 제도는 오늘의 석좌제도(碩座制度)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조항목
독서당, 초계문신
역참조항목
강극성, 한국의 유교, 홍성민, 윤계, 이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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