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서 뛸 때 젊은 투수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준 것으로 압니다. 한화 있을 때 젊은 투수들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넌 투수가 뭐라고 생각하니?”라고. 그러니까 “타자를 아웃 시키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전 그랬어요. “그 말도 맞다. 하지만, 그보다 투수는 공 던지는 사람이다.” 그 말에 숨어 있는 의미는 뭔가요? 마운드에선 공 던지는 것만 생각하라는 뜻이었어요. 내 공에 집중할 때 타자도 아웃 시킬 수 있고, 팀도 승리로 이끌 수 있어요. 어느 나라나 불펜에선 기가 막히게 던지는데 실전 마운드만 올라가면 형편없이 무너지는 투수들이 있어요. 왜 그렇겠어요? 포수 미트와 내 공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타자를 더 의식해서 그래요. 정말 내 공에만 집중하게 되면 포수 미트만 또렷하게 보이고, 타자는 뿌연 실루엣처럼 보이지 않게 돼요. ‘훈련을 실전처럼, 실전을 훈련처럼 하라’는 말의 의미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할 때 흔들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도 나중에야 그 뜻을 알게 됐어요. |
인연이 되려니까?
LA에 한인상공회의소가 있었어요. 다저스 구단주였던 피터 오말리 씨가 한인상공회의소 행사에 간혹 참석하셨나 봐요. 오말리 씨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아시아 문화를 굉장히 호의적으로 보던 분이셨어요. 그 행사에서 스티브 김 씨가 제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에요. “그렇잖아도 찬호한테서 연락이 왔었다”고요. 그 이야길 듣고 오말리 씨가 스카우트팀에 바로 전화를 하신 모양이에요. 운이 좋았죠. 왜 그렇잖아요. 오너를 다이렉트로 만난 거니까.
영화 속 한 장면 같군요.
제 인복이 좋았던 거예요. ‘스티브 김’이란 분이 참 특별했던 거죠. 그만큼 그분은 스포츠 마케팅에 박식했던 거예요. 다저스가 처음 60만 달러를 불렀을 때 뒤로 자빠지시는 줄 알았대요(웃음). 그런데 그분이 침착하게 “200만 달러는 받아야 한다”고 베팅하신 거예요.
다저스에선 어떤 반응을 보였답니까.
처음엔 다저스에서 “에이, 안 돼”할 줄 알았대요. 그런데 “생각해보겠다”고 답변한 거예요. 결국 “우리 팀 신인인 대런 드라이포트의 130만 달러가 역대 최고 계약금이다. 그걸 깰 순 없다”면서 120만 달러를 제안했어요. 대신 나머지 10만 달러는 다른 걸로 대체해주겠다고 약속했죠. 덕분에 한양대 야구부를 초청했는데 아마 10만 달러 이상을 썼을 거예요.
미국 진출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는데요. 남은 건 병역 문제였습니다. 이걸 어떻게 풀었는지 궁금한데요.
그때부터 작전을 짰죠. 스티브 김 씨 역할이 정말 컸어요. 그분 네트워크가 무척 좋았거든요. 한인상공회의소 분들이 한양대 총장님, 정부 기관 여기저기에 편지를 써주셨어요. 따지고 보면 제가 한국인 메이저리거 1호가 됐지만, 고 최동원, 선동열 선배님이 먼저 빅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으셨거든요. 그런데 그게 안 됐던 건 병역 문제 때문이었어요. 만약 그것만 잘 해결됐었다면 두 선배님이 저보다 먼저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으셨을 겁니다.
어떤 면에서 그런 느낌을 가장 강하게 받았습니까.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땐 영어를 하지 못 하면, 미국 음식을 먹지 못하면 계속 야구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지금은 (류)현진이가 영어를 좀 못해도, 한국어로만 이야기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한국, 아시아에 대한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변했고. 하지만, 제가 루키 땐 제가 한국어를 쓰면 당장 “너 영어로 이야기하라”고 그랬어요. 노모가 그래서 더 힘들었을 거예요. 한창 잘할 땐 괜찮아도 못할 땐 외로워질 수밖에 없어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찬호 씨는 어떻게 영어를 독학하게 된 겁니까.
(강한 어조로) 간절했으니까요. 제가 실수하면 당장 공격이 들어왔으니까. 왜 그렇지 않겠어요? 내 경쟁자 약점이 영어를 못하는 거라면 당장 그쪽으로 공격해 들어오지 않겠어요? 분명한 건요.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나 자신이 성장하고, 성공하려면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걸 알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영어예요.
동감입니다.
가령 ‘굿(Good)’이란 말이 있다고 쳐요. 누가 저한테 ‘굿’ 그랬어요. 통역이 “이 사람이 좋대”하면 제가 “좋대?”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진짜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려면 ‘굿’을 제가 알아들어야 해요. 그러면서 사람들과 섞이는 거예요.
네.
정말이에요. 섞이지 않으면 내가 실수했을 때 정말 힘들어요. 가시방석이 따로 없어요. 그러나 느끼는 순간 우린 가족이에요. 그러면 실패해도 다음에 또 기회가 찾아와요. 미국이나 일본 무대를 밟는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성적을 내기 위해 죽어라 던지기만 해선 한계가 있다’라는.
노모는 찬호 씨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옛날 생각이 난 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외로웠던 기억이 무척 많아요. ‘혼자’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으니까. 가뜩이나 공주에 계신 어머니와 전화 통화할 때면 정말 당장 내일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트리플A에 있을 땐 ‘치즈 사건’이 터지면서 더 힘들었죠. 그때 노모의 활약상을 보면서 ‘나도 잘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샘솟았어요. 네, 동기부여가 된 거죠. 일본 선수들에게 노모는 미국 진출의 빗장을 열어준 선수일 테지만, 제겐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제공해준 고마운 선수예요.
노모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우린 경쟁자가 아니라 꿈을 향해 질주하는 러닝메이트였다”고요. 하지만, 한·일 양국의 야구팬들은 다소 달랐습니다. 두 사람은 원하지 않았겠지만, 두 사람의 어깨에 ‘나라의 명예’라는 짐을 올려놨습니다.
저도 다저스 초창기 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게 노모는 한 명의 선수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 그 자체였어요. 하지만, 나쁜 의미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부러움이었죠. 노모 경기를 보고 일본 사람들이 열광하고, 다저스타디움에 일본 국기가 흔들리는 걸 보면서 ‘내 가족, 내 나라도 저들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자’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네,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죠.
한·일 언론이야말로 두 사람을 ‘일생의 라이벌’로 만든 주인공이었습니다.
다저스에서 뛸 때 제가 언론에 대고 이야기한 게 있었어요. “노모는 항상 훌륭한 선수였고, 정말 배울 게 많은 야구인이다. 제가 올 시즌 승수에서 조금 앞서고 있다고 노모와 비교 대상이 되는 건 아직 이르다. 은퇴한 다음에 우리 두 사람의 기록을 보고 평가해달라.”
통산 기록을 보면 노모가 123승, 찬호 씨가 124승입니다. 기록에선 찬호 씨가 앞서요.
(차분한 목소리로) 원래 10년 전에 은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은퇴를 결심하고 나니까 제 통산 기록 가운데 노모보다 나은 기록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 5년을 더 뛰게 된 거예요. (한숨을 내쉬며) 결국 124승을 기록하면서 아시안 메이저리거 통산 최다승 기록을 세웠죠.
대기록인데, 어째서 한숨을 쉬신 건지….
124승을 하고 나니까 (길게 숨을 토해내며) 허망하더라고요. 내가 이 기록을 세우려고 여기까지 달려왔나 싶어서 정말 한숨만 나왔어요.
왜지요?
제가 124승을 하면서 123승을 했던 노모는 ‘쑥’ 들어갔어요. 그때 깨달은 거예요. 언젠가 125승이 나오면 제가 ‘쑥’ 들어갈 거라는 걸. ‘이 기록이 뭐라고’ 생각하니까 저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지더라고요. 124승 기록하고 나서 혼자 명상을 하는데 허망해서 눈물이 나왔어요.
124승이 주는 의미는 숫자 이상이라고 봅니다.
나중에 깨달았죠. 124승을 거두려고 몸부림친 건 부질없는 일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과 노하우는 절대 부질없는 결과가 아니란 걸요. 언젠간 다른 선수들에게 필요한 경험과 노하우로 작용할 테니까요.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롤모델이 돼라?
지금 기회가 좋은 게 요즘 다저스는 강팀이에요. 노모는 당시 다저스 전력이 좋지 않았는데도 그 역할을 잘해냈어요. 전 현진이가 지금처럼 잘 절제하고, 열심히 훈련하면 20승과 사이영상 모두를 손에 쥘 수 있다고 믿어요. 팀원 운도 좋잖아요.
팀원 운이요?
제가 ‘확’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엔 ‘캐빈 브라운’이란 뛰어난 야구 선배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현진이 옆엔 클레이튼 커쇼가 있어요. 서로 공유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게 무척 많을 겁니다. 이런 좋은 팀, 이런 좋은 동료들과 함께 뛰면서 현진이가 더 성공한다면 한국 선수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넓어진 문을 통해 세계야구의 중심으로 들어올 겁니다. 한 말씀 더 드리면.
네.
정말이에요. 올 시즌이 현진이에겐 기회에요. 아니 우리 모두의 기회에요. 현진이를 통해 뭔가 가치를 생산하고, 후배들을 위해 더 문을 넓히려면 우리 모두가 현진이를 도와줘야 해요. 주위 사람들과 팬과 언론 모두가 말이죠.
‘야구 개척자’로서, 한국인 1호 메이저리거로서, 류현진의 한화·다저스 선배로서 ‘후배 류현진’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현진이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하는 게 중요해요. 주변에서 ‘뜨거운 물’이라고 해도 난 ‘찬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해요. 현진이는 잘 할겁니다. 주위에서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뭔가를 결정하는 게 두려워집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향한 도전 정신도 줄고.
(차분한 목소리로) 놓으면 다시 쥘 수 있어요. 그러나 놓치면 다시 쥘 수 없습니다. 그땐 빼앗아야 해요. 제가 감히 말씀을 드린다면 놔야지 보인다는 겁니다. 갖고 있으면 보이지 않아요. 네, 물론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요. 놔야지 내가 쥐였던 것의 소중함과 가치를 비로소 느낄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제가 그 친구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앞으로 어떤 성적을 낼까’가 궁금해서가 아니에요. 전 신수가 ‘지금의 역경을 잘 헤쳐내서 얼마나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을까’하는데 더 큰 관심이 있어요. 공교롭게도 신수가 제 전(前)소속팀 텍사스로 왔는데요. 혹여 신수 마음속에 ‘난 박찬호 선배처럼 되지 않을 거야’하는 부담이 있다면 아예 박찬호란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우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신수도 좀더 자유로워질 겁니다. 그러면 쫓기지도 않게 될 거예요. 자꾸 쫓기니까 아파도 뛰고, 연봉 생각하고 미안해서 아파도 참고 스타팅에 나가는 거에요. 왜 제가 그걸 잘 아는지 아세요?
그게 뭡니까.
예전에 어느 분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게 뭐냐면 이분이 사업하다가 망하셨나 봐요. 그래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박찬호가 생각나더래요. ‘아, 오늘 박찬호 등판하는 날이지’하고. ‘죽을 때 죽더라도 박찬호 경기나 보고 죽자’고 생각하셨대요. 그런데 그날 등판에서 제가 진 거예요. 이분이 열 받은 거예요. 열 받으면 더 홧김에 뛰어내려야 하는데 정말 열이 받으니까 ‘다음 등판 보고 죽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런데 제 등판은 4일을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때까지 사신 거예요. 그리고 5일째 되던 날 박찬호가 나왔는데 정말 잘 던진 거예요. 잘 던진 경기 봤으니까 뛰어내려야 하는데…. 거기서 희망을 찾으신 거에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거죠.
아마 그런 분이 많으실 겁니다. 전 마포대교까진 가지 않았지만, 현실에서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찬호 씨 경기에 집중하며 잠시 시름을 달래곤 했습니다. 혹시 등판 때마다 ‘누군가 내 경기를 보고 있으니 잘 던지자’ 이런 의식을 하며 투구를 한 적은 있습니까.
(천천히 고갤 내저으며) 없어요. 있었다면 제 야구에 집중하지 못했을 거에요. (박)세리랑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우리는 영웅이 되고 싶어서 영웅이 된 게 아니다. 우린 영웅도 아니었다. 진정한 영웅은 우릴 응원했던 분들이다. 영웅을 통해 자신들을 발견한 것뿐이다. 우리는 우리 일에만 집중하자”라고요.